시(詩)/강연호

강연호 - 이름의 기원

누렁이 황소 2020. 2. 25. 10:40

 

뒤에서 누가 이름을 부른다

무심코 돌아보지만

나를 부른 게 맞나

 

아무리 불러 세워도

이름은 이름 부르는 순간

이미 과거의 형식

 

후회가 덕지덕지 앉은

박박 지우고 새로 고쳐 쓰고 싶은

과거는 흘러갔다, 과거는

흘러가서

 

아는 이름인 줄 알았어요

아는 이름이 없네요

이름의 과거는 곰곰 쌓이지

 

과거의 다른 이름은

곡절이지, 이름이 이름을 변명하지만

꾹꾹 눌러쓰는 연필심보다

이름이 먼저 부러질 것 같은

 

이름을 불러 만나고

이름을 걸고 약속하는 것

이름의 곡절은 깊기도 하지

 

이름은 이름 부르기 전까지만 유효한 것

이름은 이름을 걸어

배반의 덫을

피할 수 없는 기원으로 삼지

(그림 : 이형준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