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박숙이 - 커트를 하며

누렁이 황소 2020. 2. 5. 11:38

 

확 쳐 주이소

구질구질 할 바에야 차라리

짧게,

축 늘어진 내 의식을 잘라버리렵니다

어느 것이건 길이만큼, 생각 또한 길어지기 일쑤여서

세팅으로 탄탄히 말아 올린다 해도 축 쳐지는

의욕,

머리칼도 이젠 꽤 지쳤나 봅니다

웨이브 하나 없는 삶,

꼿꼿이 서지 않아 화학약품에 의존하는 나이인지라

모든 것을 이젠, 짧은 쪽에서 바라보고 싶습니다

헝클린 생(生)의 아득한 뒷부분까지도

커트를 하면 조금이나마 커버될 수 있을지,

확 쳐 주이소

잡념뿐만 아니라

소리 없이 드러눕는

게으른 내 의식조차도 시퍼런 그대 감각으로 확 쳐 주이소

반듯한 가르마 하나만 남기고...... 

(그림 : 홍미옥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