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민구식 - 두껍아 두껍아
누렁이 황소
2020. 1. 25. 20:27
놀다가 집 와선 구정물 한 바께스에 겨 타서
뒷산 매 둔 소 멕이거라
놀다가 도야지 쌀겨도 풀어주고
닭 모이는 저녁에 주구
놀다 잊지 말구 강아지 밥과 염생이 멕이도 주거라
사람만 쳐다보는 짐승들 구박하문 죄 받는다
놀다가 혹시나 소나기 옴 얼릉 달려와서 말리던 거 거두고
놀다 해거름 됨 엄니 널어둔 빨래 흙 묻히지 말고 걷고
놀다 와서는 큰 아궁이 물도 뎁혀 놓고
마당도 쓸어야 하는데…
논다고 밤나무에 오름 혼난다. 떨어진 거만 주워야 한다
놀아도 정서방네 아들 하고는 놀지 말거라
갸네 삼밭에는 얼씬도 말고, 그눔네
밭은 지나만 가도 도둑놈 되능겨
놀다가 우체부 보문 인사 잘 하고서 우리집 편지 없능가 꼭 물어 보거라
군대 간 느그 형 편지 올껴
아들 데려다가 논다고 담배 건조실 시렁에 바다리 집 건들지 말고
놀다가 배고픔 밭에 오이 따 묵던가
놀지만 말고… 알았냐?
‘네∼!’
그러고도 미덥지 않아서 담배 한 대 더 피워 무시곤
날 한참 흘겨보시다가 지게를 지셨다
나는 맨날 그렇게 놀았다
바다리 : 말벌
(그림 : 한영수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