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민구식 - 빈 집

누렁이 황소 2020. 1. 25. 20:21

 

기울어진 흙벽에 삐뚤 걸린 괘종시계

십여 년 전부터 6시 35분

 

그을음이 시간을 그리는 봄날 오후

불쏘시개 기다리는 나뭇단

손 때 묻어 반질한 부지깽이 두 개

삼태기와 고무래도 재를 퍼내려 기다리고

된장찌개 냄새

식어버린 화로를 내려다보고

어머니 손 따스하게 녹이느라

제 몸을 데웠을 녹슨 가마솥

부뚜막을 깔고 앉아 졸고

밤마다 뜨거웠을 구들장

틈새마다 쥐며느리들의 살림 시끄럽고

사진틀 속에선

모시적삼 쪽머리에 수줍은 어머니 곁에

형과 내가 손잡고 다정하다

 

울타리엔 개나리 소꿉놀이 한창이고

장독대 붓꽃 벌 나비 시퍼런데

연기 오르지 않는 굴뚝 허리 반으로 휘어진

내 유년의 집

 

댓돌 위에 늘어진 고무신

아버지 냄새를 삭히고 있다

(그림 : 이종열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