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이상문 - 파꽃
누렁이 황소
2020. 1. 3. 12:58
고작, 혼자서는 넓은 안마당이 쓸쓸했을까
사랑채 뜰 위에 슬그머니 들어선 대파 한 뿌리
봄내 모른 척했더니 불쑥 꽃을 피웠다
낯선 풍경이 절경을 이룬 벼랑에
간절함이 세운 집 한 채
떠밀려본 사람들은 안다
밀릴수록 사소한 것에도 목숨 거는 억척이
스스로를 더 초라하게 하는 법인데
가끔 튀어 오르는 낙숫물에도 손을 벌렸을 저 가난이
어떻게 텅 빈 속을 감추고 일가를 지켰을까
모질지 못해 떠돌았을 생인데
파꽃보다 많은 말꽃을 피우는 툇마루에
제 몸 다 비워 핀 노인들
멀리 있는 아이들도 불러오고
꺾어진 시절도 끄집어내는
파안일소(破顔一笑),
아린 바람 냄새로 풀풀 흩어지던 웃음들이
집 안에 든 미물도 함부로 내치는 게 아니라는
오래된 이야기로 다시 저녁 바람벽에 못을 박는다
서로를 다독거리다
바람 든 무릎을 콩콩거리며 나서는 이웃들
쥐똥나무로 담장을 두른 문간에서
나는 중세의 문지기처럼 서성거렸다
안마당이 파꽃처럼 피어나는 저녁을
(그림 : 권기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