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박성규 - 사모곡

누렁이 황소 2019. 12. 27. 16:57

 

 

올해도 호박씨를 깠다
너무 말라서 잘 까지지 않아
물에 다시 불려서
꾸덕꾸덕해지기를 기다렸다가 깠다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긴긴 겨울을 견뎌내어
봄이 되면 발아하겠지만

그러기까지
제 소임을 다하는 껍질
정말 위대했다

호박씨를 까다 보니
다른 씨앗들도 위대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내게도 껍질이 있었다
그 껍질 속에서 열달을 견뎠다가
발아가 되어 세상에 나왔다

(그림 : 김미희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