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박숙경 - 등꽃
누렁이 황소
2019. 12. 26. 10:05
여린 손가락 마디마디
빼곡하게 내걸어둔 눈부심이 있어
휘어진 등짝이 모처럼 환해진다
세상에 호명 받지 못한 것들조차
저 등불 아래 무릎 맞대고 앉으면
시리고 비좁았던 마음마저
따뜻해질 것 같은데
예고 없이 혓바늘 돋듯 한 일상이 아려도
꽃등불 저리 내걸리면
무거워진 보따리 잠시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삶의 층계는 가파를 거라며
삶의 안쪽은 끓는 물주전자 뚜껑처럼 달그락거리는 거라며
꽃 같은 말로 토닥여주던 너 같아
굽은 등 위 마알간 메아리로 스며 내리는
사월이 다 질 무렵
봄이 자글자글 여물어가는 나지막한 오후
(그림 : 김용남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