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손순미

손순미 - 아귀

누렁이 황소 2019. 12. 14. 14:51

 

해변시장에 아귀 사러갔다

온 몸이 주둥아리인 아귀는

톱날 같은 이빨을 진실의 입처럼 벌리고 있다

금방이라도 죄 지은 자의 손목을

확! 나꿔채기라도 할 것처럼

기세등등 커다랗게 벌린 입 속으로

햇살이 빨려들어간다

 

생선장수가 망나니처럼 칼을 들고 나와

사정없이 아귀 뱃속을 가르는데

조기, 새우, 가자미, 고등어, 오징어 등속이 나온다

바다의 것들을 모조리 잡아 삼킨 듯

뱃속에 어물전 하나 차려놓았다

 

먹어도 먹어도 한평생 허기에 빠져 산다는

아귀 귀신이

탐욕으로 생을 조롱했구나

죽음으로 탐욕을 고백했구나

 

아귀의 삶을 고스란히 받아낸 도마에

노을이 흥건한 저녁

 

아귀의 고해성사 한 접시 올려놓았다

한 마리 아귀찜을 먹는다

한 마리 아귀찜을 듣는다

(그림 : 강종열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