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김금란 - 슬픔이 슬픔을 위로할 때

누렁이 황소 2019. 12. 6. 14:33

 

무디어진다는 건

그만큼 견뎌낸 시간이 길다는 것이다

사랑도 슬픔도 견뎌내는 일이다

견뎌내지 못한 것들은

어디에서든 상처가 되고

상처가 된 것들은

보이지 않는 틈마다 촘촘히 박혀

결국은 슬픔이 된다

무디고 거칠어진 손이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부드러운 손길로

어둠 속 숨어 있는 상처들을

어루만지고 다독이며

온몸이 무디어지고 헤져도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 손

그리하여 어둠 속 웅크리고 있던 슬픔들을

온전히 다시 세상 밖으로 돌려보내는 손

나에게도 그런 손이 하나 있다

(그림 : 류영도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