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최수지 - 간판 없는 전문집
누렁이 황소
2019. 11. 17. 13:42
생미역을 두 손으로 빠닥빠닥 치댄다
저승꽃 선명한 손가락 사이로 빠지는
거친 바다 거품
하루의 시작이다
탯줄을 목에 감고 태어나서가 아니라
없어도 좋을 식솔 하나
엄동설한 윗목에 사흘 밤낮 미군 모포에서
보란 듯 살아남아 건진 이름
끝자
배꼽 안이 시리면 먹었다는 미역국
혼자 된 지금은 날마다 미역을 빤다
치댈수록 거품 무는 미역가닥
달구어진 솥에 달달 볶아
서럽던 날 만큼 물 부어 끓이면
서너 평 외풍 심한 가게 가득
팽팽히 차오르는 온기
새벽시장
살기 바빠 아플 수 없는 이들이
언 몸 풀러 들어설 때마다
한숨 대신 훌훌 불라고
시락국밥 토렴 전에 내놓던 미역국
정 따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웃을 때 더 선명한 곰피 얼굴
끝자 할매의 간판 없는 시락국밥집은
언젠가부터 미역국 전문집
(그림 : 이사범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