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권순자 - 낙엽을 미행하다

누렁이 황소 2019. 11. 17. 13:31

 

바람 몇이 길을 슬슬 기어가다가

쓸려가던 은행잎들 속으로 몸을 말고 들어간다

제 쓸쓸함을 감추고

제 빈손을 감추고

 

허기져 노래진 얼굴이 사라지고

빗줄기에 젖은 궁상도 노랗게 채색되어

잠깐 햇빛에 찬란하다

 

버둥거리던 은행잎이 떼구루루

제 꿈인 양 품고 나동그라진다

 

바람은 그렇게 배고픈 계절을 날 것이다

춥고 아픈 시간을 노랗게 스스로 불붙이며

어딘가에 숨어서 몸을 말고

봄을 기다릴 것이다

 

숨을 죽이고

몸을 낮추고

한때를 건널 것이다

(그림 : 서정도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