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정이랑 - 텃밭

누렁이 황소 2019. 11. 10. 20:03

 

맨처음 감자를 심어놓고
다음날 옥수수씨를 묻었다
호박, 오이, 가지, 토마토까지 나열해 놓는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처럼
그들의 배가 불러오기를 기다리며
햇볕을 친친 감아 물을 준다
젖을 먹고 트림하는 아이 같은 것들
주인의 발자국소리로 커가는 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참선에 든 호박 한 덩이,
아아, 나도 어쩌면
아버지의 발자국소리 들어가며
여기까지 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림 : 구병규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