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사윤수 - 경부선
누렁이 황소
2019. 11. 8. 13:49
나 어릴 때 아버지는 삼랑진 철도 보선소에서 근무했고
바람 난 아버지를 찾아 엄마와 삼랑진에 간 적 있고
삼랑진 기찻길 옆에는
증기기관차가 다닐 때 물을 대던 높고 큰 물탱크가 있고
어느 봄 밤 밀양 강변에서
k와 연 날리기를 한 적이 있고,
오월 상동역에서 만나 올갱이국을 사 먹고
해발 사백 미터 솔방마을
그 가파른 마을길 오르며 내가
갑자기 눈이 쏟아져 오늘 못 돌아가면 좋겠다고 하자
k가 그럼 살림을 차려야겠네요, 하고
조성기 단편소설 「통도사 가는 길」에 물금역이 나오고
물금(勿禁), 금하는 것이 없는 세계로 가려면
케이티엑스가 아닌 무궁화를 타야하고
경부선 하행 낙동강 따라
산등성이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겹쳐
강물은 산 그림자 붙들어 매고
산 그림자는 강물에 젖고
건널 수 없이 아득하고
가을엔
무궁화호 기관실 맨 앞자리 얻어 타고
시월을 헤치고 노을을 넘어
길 없는 레일 위에 햇빛이 부서지는
그 먼 역까지 달려가고
마구 마구 달려가고
(그림 : 김태균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