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박소란 - 웃음

누렁이 황소 2019. 10. 31. 19:21

 

 

나는 요즘

웃음이 부쩍 늘었습니다.

 

웃음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습관이 중요합니다.

 

텔레비전은 어디에나 있고

개그맨은 언제나 등장합니다. 느닷없이

나둥그러지고 느닷없이 자지러져

그런 걸 보면서 밥을 먹지요. 두 그릇씩 꼭꼭 먹지요.

 

정신없이 수저를 놀리다 보면

미처 발라내지 못한 한 조각 날 선 비애가 무른 잇몸에

불쑥이 들어박히기도 하지만

눈물이 찔끔 나기도 하지만, 그렇지만

 

웃음은 부쩍 늘었습니다.

웃음은 굳세고 웃음은 누구보다 영민하니까

 

웃음도 밥을 먹지요 두 그릇씩 꼭꼭 먹지요.

 

흑백의 화면 속으로 슬그머니 기어들어가

내가 막춤을 추면

기다렸다는 듯 웃음은 자지러집니다.

빨개진 얼굴을 감싸 쥐고 바짝 마른 어깨를 들먹입니다.

 

조명이 꺼진 무대

모두가 퇴장한 뒤에도 웃음은, 나의 웃음은

혼자 깔깔깔 서 있습니다.

(그림 : 정일모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