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권은중 - 행운목

누렁이 황소 2019. 10. 18. 17:23

 

 

살아가기 위해서는

토막토막 잘려야 했다

잘리는 것이 사는 것이고

죽지 않는 것이 행운인 것인가

접시 물에 잘린 상처를 묽히면서

토끼처럼 초록귀를 세워 두리번거렸다

간신히 잎을 내고 뿌리를 내면

다시 토막 나 생이별이 시작되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나비 한 마리도 날지 않는 공간

밑동이라도 크면

누군가의 쉴 자리가 될 수 있을 텐데

토막토막 잘려야만

당신 가까이 갈 수 있으니

이 몸이 정녕 행운목이라면

내게 물을 주는 당신이 행복하기를

(그림 : 이임호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