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이사라

이사라 - 옛 공터

누렁이 황소 2019. 10. 11. 08:41

 

마음 쓸리며 다치며 어리석게 살다보면

등뒤로 돌아서서

오던 길 다시 가고 싶다

멀리서 끌어당기는 첫 눈길 따라가서

지금은 흔적도 없어진 옛 공터에 몸 뒹굴고 싶다

 

뒷길은 기억의 끔에서 기다려준다

사라지지 않고 언제나 그렇게 웃어준다

그러면 어느 역이건 내려서

중앙시장의 중앙을 지나

어느 골목이어도 좋을 골목길로 접어든다

지친 눈 안으로

스르르 공터가 들어오고

마음에 새긴 사방치기 금이

거기서 아직 희미하게 내 몸안에 금을 긋는다

 

동쪽으로 가면 동쪽의 공터

서쪽으로 가면 서쪽의 공터

그동안 채워진 것은

햇살에 변색되어버린

아무것도 감출 수 없는 시간의 몸뚱이

  

되돌아올 발끝에서

발길에 채이기를 기다려 그동안 길게 누워 있던

낡은 명패 같은

마음 부드러운 그 빈터에

아무 말없이 나는

또하나 공터를 심는다

(그림 : 정세화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