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권영부 - 방향

누렁이 황소 2019. 10. 5. 16:07

 

가을이 짙어지자

화살표처럼 생긴 누런 느티나무 잎들이

땅바닥으로 우수수, 내려왔다

눈여겨보면

모두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를 쫓아가면

봄과 여름 내내 바람에게 세차게 흔들려

방향감각과 함께 평정심을 잃은 잎들이

제각각 벌이는 시위라는 것을 이내 알 수 있다

초겨울바람 한 줄기가

매서운 속도로 나뭇잎들의 시위를 쓸어 가면

멀거니 저 홀로 우뚝 선

느티나무는 내리치는 눈송이를 맨몸뚱이로 막아내며

새판을 짤 궁리에 빠진다

그리하여 새봄이 오면

푸릇푸릇한 이파리를 다시 매달고

세상살이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각오를 단단히 다질 것이다

(그림 : 김기홍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