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이규리

이규리 - 등

누렁이 황소 2019. 10. 5. 15:10

 

등은 수식이야

등을 자주 보이는 사람 따라가지 마라지만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 있을 것 같았어요

 

반쯤이 공허라 해도

또 반쯤이 모호함이라 해도

 

우린 사실 그곳에 도착한 적이 있어요

 

언제까지나 늙지 않을 것처럼 뒤를 미루지만

달리 보여줄 게 없을 때

보게 될까 두려울 때

 

등이라도 내밀어야 했다는 것

 

무엇으로도 말 할 수 없는,

말해도 닿을 수 없는,

 

수식이라면 왜 뒤에 두었겠어요

 

다 알게 되더라도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비참도 있는 것

 

먼 불빛도 다가가보면 내 집이듯

 

등은 그런 먼 불빛 아닌지요

(그림 : 정종기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