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김상미

김상미 - 연륜의 힘

누렁이 황소 2019. 10. 1. 12:29

 

주름이 하나 더 늘었다

손가락으로 만져본다

따뜻하다

 

고뇌가 사랑보다 몸에 더 많은

흔적을 남기는 걸까?

아님 사랑이 고뇌보다 몸에 더 많은

흔적을 남기는 걸까?

 

꿈꾸듯 거울 속의 나를 본다

 

저 몸속에서 얼마나 많은 약속들이 꿈들이

힘겹게 뜨겁게 운명의 호미를 들고 고랑을 팠을까

그리고 그 고랑에서 나는 또 얼마나 자주

주저앉고 도망치고 또 일어서려 애썼을까

 

그 불꽃들이 모여 주름이 되었다는 게

이제는 아프지 않다

나무늘보가 천천히 마음씨 좋은 미소로

나무에 매달리듯

어느 날 문득 깨닫는 늙어감의 미학!

 

얼마나 멋진 발견인가?

빨리 정신을 차리든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든

상관없이

 

자연스레

내면을 조용히 재편성하는 연륜의 힘!

(그림 : 박정옥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