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김나영 - 비유의 외곽
누렁이 황소
2019. 9. 24. 11:16
도색공들이 아파트 외벽에 매달려 있다
비계(飛階)보다 더 높은 곳에 생계가 있다 외줄은 언제나 거기서 내려온다
외줄에 비계를 세우고 허공을 발끝에 친친 감아 신고 목숨을 붓으로 사용하는 숙련공들
온몸을 구부려 색과 선을 덧입히는 저들의 곡예는 서커스도 예술도 아니다
아무도 박수 쳐주지 않는 수직의 허방에서
그들의 붓질은 놀이도 자유도 아닌, 동료의 얼굴에 묻은 페인트 자국을 마주보며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서 먹는 식어가는 짜장면의 온기 같은 것
사방이 낭떠러지다 사방이 절벽이다 삶이 줄타기다
저들이 움직일 때마다 앞뒤 좌우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확장되는 외연들,
비유가 다 담아내지 못하는 가파른 사각지대에서 수당처럼 피어오르는 아찔한 페인트 향
헌 아파트가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림 : 이경하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