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김종제 - 청송으로 가는 길

누렁이 황소 2019. 9. 23. 12:22

 

 

어느 날 네가 선 자리에

예고도 없이 찾아온 낯선 삶에게

결별이라는 수갑으로

덜컥 손목 채우고

발목에는

안녕이라는 쇠고랑 채우고

아무도 모르게 그곳으로 떠나가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살아 숨쉬다가

죄라는 죄는 모두 다 저질러

청송이라는 땅으로

지나버린 시간을

문득 묻으러 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거진 생(生)의 수풀을

휘적휘적 헤치고 가다가

손으로 건드린 것들 참으로 많았고

길도 아닌 생(生)을 걸어가다가

발로 차 버린 것들 억세게 많았으니

구불구불 주왕산 산길을 걸어 올라

주산지(注山池) 바라보면서

사랑에 대해서

너에 대해서

뼈속 깊이 뉘우치라는 것이다

물속에 뿌리박고 서 있는

왕버드나무를 바라보며

그와 똑같이 반성의 자세로

삶을 다시 꺼내 반추해 보라는 것이다

물속 독방에 홀로 갇혀

찾아올 누구 없이

고요하게 적멸해 보라는 것이다

(그림 : 장태묵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