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김종제 - 갈대밭에서

누렁이 황소 2019. 9. 23. 12:19

 

바람에 쉽게 꺾어진다고

결코 외면하지 말아라

눈비에

굳세게 저항하지 않는다고

절대로 고개 돌리지 말아라

흔들리면서 살아온

어머니의 가는 허리 같다

키 낮추면서 살아온

아버지의 헤진 무릎 같다

무엇 때문인지

묻지 않아도 알리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뿌리채 뽑혀나갈

세월을 꿋꿋하게 견뎌냈으니

물 가까운 곳에 너희를 낳아

대를 이어

문패 하나 걸어놓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 아니냐

그러니 너희들

폭풍우에도 매달려 있어라

눈보라에도 굴복하지 말아라

살아 남아서

하늘을, 땅을, 이 가을을

흔들고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갈대가

어제의 어머니와 아버지였고

오늘의 나와 당신이고

내일의 우리 아이들이다

내 삶이 온전하게 들어있으니

부둥켜안고 살겠다고

갈대밭으로 한참을 걸어간다

(그림 : 한임수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