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고은영 - 단풍 지는 가을
누렁이 황소
2019. 9. 23. 12:07
지리한 기다림에 가을은
주체할 수 없는 감동과 설렘을 저울질하다
단단히 닫아 건 가슴을 월장하고
해일처럼 밀려 온 것이다
낙하하는 것들은
험한 세상의 침묵을 깨트리지는 못해도
나약한 군상들의 식어버린 마음을 움직이고
굳은 가슴에 돌을 던지는 것이다
찡한 파문이 올 때까지
아, 어느 여백의 한 귀퉁이를 허물며
다시 쓸쓸한 어둠의 사각지대로
흥건히 젖어 오감을 적시는 낙엽은
팔랑거리다 쌓이는 것이다
날마다 한적한 창가에 배부른 그리움을
하나씩 게워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푸른 혈맥을 빨며 촘촘히 돋아났던 날개들이
하나씩 외롭게 부서져 가는 기로엔
햇살 든 단풍이 영혼에 가시로 박히고
사레든 목 울대로 메마른 기침만 수시로 콜록대는 것이다
발열의 불꽃들이 적조한 시간마다 빨간색으로
뜨겁게 뜨겁게 떼지어 꽃을 피우는 것이다
(그림 : 신재흥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