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이명윤

이명윤 - 의자들

누렁이 황소 2019. 9. 18. 12:07

 

주. 차. 금. 지.

문신처럼 등짝에 새기고 있다

의자의 본분도 잊은

쓸쓸한 농담 같은 쓸모

지나던 행인이

초라한 늘그막에 대하여 모욕을 던지고

쉴 곳 잃은 바퀴들이 등짝을 향해

몇 차례 깜빡이를 켜지만

묵묵히 빈 무릎만 내려다본다

수십 년간 자부심이었다던 회사가

덜컥 그의 등에 붙인 대기발령에

떨구던 눈빛도

빈 무릎을 향해 있었지

뒤로 넘어져도 무릎을 펴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의자들

의자에게 무릎을 내어주는 것이

의자뿐인 저녁이 관절을 삐걱거리며 오고

서로의 등을 껴안고

기우뚱 건너는 불면의 밤

환한 잇몸을 드러낸 달이 웃는다

선착순 호루라기 소리

뒤뚱뒤뚱 걷는 네 마리 오리들

붉은 페인트 등짝에 새기고,

고장 난 발목 날개에 숨기고,

(그림 : 이형준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