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배창환

배창환 - 호반의 아침

누렁이 황소 2019. 9. 15. 12:27

 

 

나는 들었네 
한걸음 앞도 막혀 있는 안개 속에서 
내 가슴 찰랑거리며 와닿는 호수의 잔 물결소리 
아득한 곳으로부터 밀려와서 
새벽잠 덜 깬 내 모래밭을 철썩철썩 때리는 
낯익은 너의 소리를 


밤은 오직 지나기 위해 있었지 
물총새는 일어나 포물곡선으로 
허공을 가르며 먹이사슬로 들고 
나는 또 보았네 
물가 어린 느티와 싸리순 사이를 오가며 
팽팽한 강철집을 짓는 
작은 거미들의 눈부신 노동을 


 이 지상의 가장 깊은 골짝을 스쳐가는 
바람조차 
저 혼자 살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며 
새벽마다 더 낮은 땅으로 내려서는 수면의 흔적은 
물가 암반에 살아온 자취를 남기는데 
키큰 갈대밭 부근에서 
밤새 추위를 떨며 서성이던 별무리는 
지금 돌아오는 햇살에 들킨 내 발자국처럼 
어지러이 흩어지고 없네 
별들은 어디로 떠내려간 걸까 


안개는 또 어디까지 밀려가고 있는가 
사람 살지 않는 이 외딴곳으로 와서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인가 
사람에게 얻은 병은 
사람 속에서만 낫는다는 말을 


물에 잠긴 갈대숲의 웅얼거림으로 받으면서 나는  
저 햇살의 비상하는 빛다발에 머릴 풀어  
다시,사람들이 사는 땅으로  
돌아갈 것을 믿네 

(그림 : 장태묵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