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노수옥 - 박제된 시간

누렁이 황소 2019. 9. 7. 09:59

 

소리가 통과했다

순간을 포착한 흑백사진 한 장

찰나가 빛의 속도로 박제되었다

 

지워지는 저녁의 모서리

머리를 흩날리던 바람의 두께

하루를 스캔해 놓은 그대로

정지된 시간이 갇혀있는 이곳

그때의 봄이 살고 있다

 

기억의 그늘이 펼쳐놓은 평평한 시간

어쩌다 꽃 떨어진 자리에 조롱조롱 맺힌 살구

입 안 가득 침이 고인다

 

누가 이렇게 떠미는 것일까

나는 지금 흘러가고 있다

사진 밖의 나는 시들어가고

사진 안의 여자는 아직도 싱싱하다

 

몇 번의 봄이 지나갔어도 살구꽃은 지지 않았다

렌즈에 갇힌 어느 날

인화되지 못한 채 내 가슴속에 있다

(그림 : 신종식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