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박이화 - 똥패

누렁이 황소 2019. 9. 1. 21:36

 

화투라면
꾼 중의 꾼이었던 나도
다 늦게 배운 고도리 판에서는
판판이 깨어지고 박살납니다.
육백시절의
그 울긋불긋한 꽃놀이패를
그러나 고도리 판에서는 만년 똥패를
미련 없이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늘상 막판에 피박을 쓰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나는 저 한물간 낭만주의에 젖어
이 시대의 영악한 포스트모던에 영합하지 못했던 겁니다.
사랑도 움직인다는 016 디지털 세상에서
나는 어리석게도 아날로그 추억에
젖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지금 내 생애도
버리지 못하는 패가 하나 있습니다.
젖은 꽁초처럼 미련 없이 던져야 하는데도
홍도의 순정으로 도무지,
내 손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패가 하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더 이상 히든패가 아닌 세상!
잊어야 하는 데도
언제 어디서나 흥얼거려지는 당신
흘러간 동숙의 노래처럼
그리움이 변해서 사무친 미움이라면
당신은 분명
내 생애 최악의 똥패인지 모릅니다.

(그림 : 이청초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