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김석규 - 산복도로

누렁이 황소 2019. 8. 24. 14:29

 

밭은 기침을 뿌리며 아래로 내려간다.

벌써 날이 훤히 밝았는데도

외등이 돌아가지 않고 서 있는 것은

밤이 가고 아침이 되기만을

꼬박 뜬 눈으로 기다려 온 때문

곤비한 삶은 산복도로보다 더 위쪽의

꾸불꾸불하게 얽히고 섥혀 있어

오늘도 하루의 끼니를 걱정하며

서둘러 동동걸음 쳐야하는 때문

돼지꿈 꾼 사람도 개꿈 꾼 사람도

부스스 일어나 눈 비비며

산 입에 거미줄 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

등이 휘도록 무겁게 살아가는

이제 하루만이라도 편히 마음 놓을 법한데

휘청 휘청 아래로 내려가는 그림자 따라

허리 꾸부정히 외등도 꾸벅꾸벅 간다.

(그림 : 박용섭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