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손세실리아

손세실리아 - 두모악에 전하는 안부

누렁이 황소 2019. 8. 18. 22:29

 

아무것도 취하지 않았다 고집하지도

않았다 포획하기도 전에 이미 그대

생의 일부였다가 전부이기도 했던

제주의 구름 바람 오름

 

약속한 편지 한 줄 여태 쓰지 못했으나

나의 가슴벽은 수시로 웅웅거렸다

그때마다 굳어가는 그대 망막 속

이어도를 배회했다

이쯤에서 쓸데없는 소리 그만 두라며

피식 웃어주면 좋겠다 그럴 여력이라도

제발 남아 있기를

 

쪽창 너머 무연한 눈길로 그대 나를

배웅한 지 한 계절이 훌쩍 울담을 넘었다

두고 온 두모악 뜨락

눈발 속 키작은 수선화는 다 졌을 테고

창백하기 그지없던 그대 이마

봄볕에 조금은 그을렸을까 그랬을까

 

손가락 근육 한 올 그 새 또

석고처럼 딱딱해졌을지 모를 일이나

그대 사는 섬 나 다시 찾는 날

우리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손바닥만 한 쪽창에 앉아

나 마중해주시기를, 부디

두모악 : 한라산의 옛이름.

제주도 전역을 지배하는 한라산은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높이는 1,947.3m이다.

한라산이라는 이름은 산이 높아 산정에 서면 은하수를 잡아당길 수 있다는 뜻이며,

부악·원산·선산·두무악·영주산·부라산·혈망봉·여장군 등으로도 불려왔다.

(그림 : 채기선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