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정선희 - 욕맛

누렁이 황소 2019. 8. 15. 19:43

 

아름답다는 말보다 귀엽다는 말이 좋아

귀여운 건 작은 꽃송이 같은 것

눈웃음처럼 사르르 마음을 녹이지

봉숭아꽃 물들이듯 마음을 물들이고 말지

딸기 다리이 깔고 앉은 저 할머니

뜨리미라 해놓고 손님이 가고 나면

또 꺼내놓는 할머니, 거짓말이 너무 귀여워

어제도 정구지 첫물이라 해놓고

오늘도 정구지 첫물이라 하네

아이구 새댁아! 겨울 지난 정구지 첫물은

사위도 안 주는 법이라 안쿠나

입에 녹음기라도 달아 놓았나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

입술에 침 발라 가면서 하는 거짓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는 거짓말

속는 줄 알면서도 사고

속아도 밉지가 않아

어제 팔다 남은 것 밑에 깔고

싱싱한 것 위에 얹는 것도

쾌씸하지가 않아 안 사고

뒤적거리다 가면 뒤통수에 대고

한바탕 들이붓는 욕도 시원하기만 해

늙어도 욕맛은 싱싱하기만 해서

여름날 소나기처럼 시원하기만 해

(그림 : 김의창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