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박일만

박일만 - 네거리에서 길을 잃다

누렁이 황소 2019. 8. 15. 16:18

 

 

이곳에 오면 늘 어지럼증을 앓는다

황급히 달려가는 꽁무니를 따라가야 할지

조금은 이유 있는 직진신호를 기다려야 할지

그도 아니면 외면하고 오른쪽으로 돌아

의기양양하게 가야할지

머릿속을 휘 감는 물음표와 맞서곤 한다

 

얼마나 많은 길을 가는 가 우리는

넓은 길, 좁은 길, 휘어진 길, 비탈진 길,

마음 내키지 않게 잘 정돈된 길,

뜻하지도 않게 조종되어 가는 길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우리는

수없이 많은 길을 가야 한다

수없는 강을 건너야 한다

 

기우뚱 거리며

한 치 앞도 모를 현실에 혜안을 잃고

속살 해지는 길바닥에 감각을 뜯기며

무던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어설픈 몸짓들만 수북하게 쌓이는

네거리에서

쏜 살같이 달려가기도 하고

우두커니 기다리기도 하며

자꾸 길을 묻는다 나는

자주 길을 잃는다 나는

(그림 : 양종석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