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고영민

고영민 - 내가 어렸을 적에

누렁이 황소 2019. 8. 14. 12:20

 

나에게는 젊은 엄마가 있었지

커다란 개가 있었지

 

가득 찬 눈물

터져 나오는 웃음

빠른 발과 관절, 반짝이는 검은 머리칼,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었지

 

어떤 속삭임도

들을 수 있는 귀

아주 멀리까지 볼 수 있는 눈

조잘대는 입과

달콤한 코가 있었지

 

담장 옆의 붉은 목단, 흙의 감정

나비를 좇던 호기심

분주한 꿀벌

다락방의 작은 유령과 행복한 그림자의 춤

나만 알고 있던 주문이 있었지

 

구름의 시간과 빗소리를 따라가던

오솔길이 있었지

흩뿌려진 별이 있었지

깊은 잠이 있었지

작은 방과 쓰러지는 집이 있었지

(그림 : 박용섭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