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심재휘

심재휘 - 어느덧나무

누렁이 황소 2019. 7. 21. 13:19

 

작고 붉은 꽃이 피는 나무가

있었다

 

어김없이

꽃이 진다고 해도 나무는

제 이름을 버리지 않았다

 

어김없이 어느덧

흐릿한 뒤를 돌아보는 나무

제가 만든 그늘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어느덧나무 어느덧나무

제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러보는 나무를

떠나간 사랑인 듯 가지게 된 저녁이 있었다

 

출가한 지 오래된 나무여서

가까이할 수 있는 것은 이름밖에 없었다

(그림 : 장용길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