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심재휘

심재휘 - 풍경이 되고 싶다

누렁이 황소 2018. 9. 28. 12:08

 

언젠가 이 집을 떠날 때 한 가지만 가지고 가라 하면 나는

북쪽 창밖의 풍경을 데리고 가겠다.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그 은행나무숲에 나는 평생 한 번도 찾아가지를 못하였지.

더 멀어지지도 않고 가까워지지도 않는 숲의 셀 수 없는 표정.

내가 볼 때만 내 안의 풍경이 되는 풍경.

살다보면 이 집의 문도 밖에서 영영 잠글 때가 오겠지.

그러면 창밖 풍경을 데리고 다니다가,

애인인 듯 사귀다가,

나란히 앉아 더 좋은 풍경을 함께 보다가,

그와도  이별을 예감할 때가 오겠지.

그때가 오면 슬쩍 고백해보는 거야.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너의 뒤가 보고 싶어.

그곳으로 가서 너의 창밖에 사는

한 마리 무심한 풍경이 되고 싶다고 부탁해보는 거야.

 

누군가의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풍경으로 살아간다는 거,

비바람에 함부로 흔들릴 수 있는 표정이 된다는 거,

그러니까 나는 너무 오랫동안 풍경을 바라보기만 하며 살았던 거지.

(그림 :서정도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