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이정록
이정록 - 가슴 우물 (어머니 학교 48)
누렁이 황소
2018. 5. 22. 19:47
허물없는 사람 어디 있겄냐?
내 잘못이라고 혼잣말 되뇌며 살아야 한다.
교회나 절간에 골백번 가는 것보다
동네 어르신께 문안 여쭙고 어미 한 번 더 보는 게 나은 거다.
저 혼자 웬 산 다 넘으려 나대지 말고 말이여.
어미가 이런저런 참견만 느는구나.
늙을수록 고양이 똥구멍처럼 마음이 쪼그라들어서
한숨을 말끔하게 내몰질 못해서 그려.
뒤주에서 인심 나는 법인데
가슴팍에다 근심곳간 들인 지 오래다 보니
사람한테나 허공한테나 걱정거리만 내뱉게 되여.
바닥까지 두레박을 내리지 못하니께
가슴 밑바닥에 어둠만 출렁거리는 거지.
샘을 덮은 우덜거지를 열고 들여다봐라.
하늘 넓은 거, 그게 다 먹구름 쌓였던 자리다.
어미 가슴 우물이야, 말해 뭣 하겄어.
대숲처럼 바람 소리만 스산해야.
(그림 : 신재흥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