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장석남

장석남 - 살구꽃

누렁이 황소 2017. 8. 6. 09:35

 

                                                                                                                                  

(낭송 : 홍연경)

 

마당에 살구꽃이 피었다
밤에도 흰 돛배처럼 떠 있다
흰빛에 분홍 얼굴 혹은
제 얼굴로 넘쳐버린 눈빛
더는 알 수 없는 빛도 스며서는
손 닿지 않는 데가 결리듯
담장 바깥까지도 환하다

지난 겨울엔 빈 가지 사이사이로
하늘이 튿어진 채 쏟아졌었다

그 하늘을 어쩌지 못하고 지금
이 꽃들을 피워서 제 몸뚱이에 꿰매는가?
꽃은 드문드문 굵은 가지 사이에도 돋았다

아무래도 이 꽃들은 지난 겨울 어떤,
하늘만 여러번씩 쳐다보던
살림살이의 사연만 같고 또
그 하늘 아래서는 제일로 낮은 말소리, 발소리 같은 것 들려서 내려온
신(神)과 신(神)의 얼굴만 같고
어스름녘 말없이 다니러 오는 누이만 같고

(살구가 익을 때, 시디신 하늘들이 여러 개의 살구빛으로 영글어올 때

우리는 늦은 밤에라도 한번씩 불을 켜고 나와서 바라다보자
그런 어느날은 한 끼니쯤은 굶어라도 보자)

그리고 또한, 멀리서 어머니가 오시듯 살구꽃은 피었다
흰빛에 분홍 얼룩 혹은
어머니에, 하늘에 우리를 꿰매 감친 굵은 실밥, 자국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