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이생진

이생진 - 그리운 바다 성산포4

누렁이 황소 2014. 3. 22. 14:25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수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 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의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놔 주었다.

 

365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60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그림 : 김인수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