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장석남

장석남 - 배를 매며

누렁이 황소 2014. 2. 3. 20:38

 

아무 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등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앉아 우연히,
별 그럴 일도 없으면서 넋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찌 할 수 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

 

잔잔한 바닷물 위에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떠 있는 배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을 떠 있다

(그림 : 박호 화백)